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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 16절 - 30절 16절과 17절, 예수의 사명에 대한 설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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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6-10-03 06:55 조회8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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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0에서 누가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기술하고 있다.
4:20에서 8:4까지의 내용은(예수님의 생활에 대해서 아주 짧게 기술하고 있는) 마가복음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한편 누가는 이런 저런 이유로 마가복음 6:45-8:26에 묘사된 모든 것을 빠뜨리고 있다. .
누가복음의 내용을 요한복음의 내용과 비교해볼 때 우리는 누가가(다른 공관 복음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세부 내용 특히 예수님이 유대에서 초기에 공적 사역을 하신 일과 관련된 상세한 내용들은 빠뜨리고 있다. 그는 14-32절에서 그가 묘사한 사건이 예수님이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후에 대중 앞에 처음 나타난 것이라고는 어느 곳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예수님이 나사렛을 방문하기에 앞서 이미 상당한 사역을 하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여러 가지 상세한 기사에서 명시되고 있다(23절 참조). 그러나 여기서 사복음서들끼리 생략되는 이유를 논한다면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따로 떼어 논의함이 마땅하다


누가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하나 하나 열거하는데 있어서 나사렛 방문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의 복음서 전체 구성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예수님을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로 오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가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한 이야기와 나사렛에서 거절당하신 일로 시작한다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서 우리는 반드시 유대인에게만 기쁜 소식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기름 부음 받은 구속자로서의 그를 아주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절부터 30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 안식일에 회당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안식일에 나사렛에 있던 회당에서의 일은 그의 사역의 첫출발은 아니다.  23절에서 예수께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회당에서도 행해 볼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사렛 외의 지역에서 이미 예수께서 말씀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4-15절이 이러한 예수님의 활동을 보고한다.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 자신이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럼으로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소문을 통해 예수님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사렛에 그가 도착했다는 것은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에 회당에 그의 모습이 등장하는 순간 회당은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1)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헬라어 직역) 그리고 그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셨다(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는 안식일에 전에 하신던 대로 회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읽기 위해 (자리에서)일어났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헬라어 직역)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의 두루마리 책이 그에게 건네졌다. 그리고 그는 그 두루마리 책을 펴시며 (아래와 같이)기록한 장소를 찾으셨다.

 

그의 규례(관습, 관례)대로 -> 늘 하던데로
규례라고 해석 된 헬라어 ‘에도’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익숙한 것, 2, 관습, 관례이다. 개역 본문은 그의 규례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규례와 그라는 대명사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규례는 개인의 것이 아니며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안식일 제정하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아들이므로 그의 규례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그의 그리스도의 직분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모든 것을 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히 2장 참조) 인간으로 예수를 상기한다면 확실히 규례와 개인을 일치시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대인의 성경과 표준새번역은 ‘그의 규례’를 ‘전에 하신던 데’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익숙한’ 의미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읽기 위해 (자리에서)일어났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행해지던 여러 가지 일들 중 율법 봉독과 선지서 봉독과 해설을 위해서이다.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회당 예배의 정확한 성격이 무엇인지 또한 이시기의 회당 예배는 얼마나 고정된 형식을 지녔는지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 되어 왔다.
(참고 : Schrage, TDNT 7:810-826, 828-833, Schurer 1973-1987; 2. 423-463, 특별히 447-454, Safrai 1976c: 927-933, Billerbeck 1964)


※쉐마의 암송 (신 6:4-9; 신 11:13-21; 민 15:37-41)
※테필라와 쉐모네 에스레를 교독하는 기도
(본문; W. Forster, Palestinian Judaism in the New Testament Times [Edinburgh: Oliver & Boyd, 1964], 228-229참조하라)
율법봉독 선지서 봉독(행 13:15 참고)
본문에 대한 해설
축복(회당장의 축복과 민수기 6:24-26의 제상적 축복; Str-B 4, 153-276; P. Billerbeck, ZNW 55 [1964] 143-161을 보라 )

회당 예배에서 히브리 성경은 한 절에서 세절을 단위로 하여 서서 봉독되었다. 그 다음 그 성경 본문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구두로 통역되었다. 이 번역은 때때로 탈굼 방식으로 쉽고 자세하게 의역되었다. 그러나 통역자가 본문을 직접 읽지는 않았다.
모세 오경은 안식일마다 봉독되었다. 그리고 때때로 선지서가 모세 오경 다음에 봉독되기도 했다.
성경을 봉독한 다음,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설해 주도록 어떤 사람이 초빙되었다. 회당 예배에 열 명 이상의 남자 성인이 참석했다면 자격을 갖춘 어떤 남성이 이미 봉독한 구절들에 대해 또는 새로운 성경 구절들에 대해서 해설 할 수 있었다.
(율법을 봉독하는 다양한 규정에 대해서 요세푸스의 ‘아피온 반박’, 2, 17&175; 행 15:21; m.Meg. 2.4, 3:4, 4:1-2, 4,6,10을 참조하라 비록 미쉬나가 주후 약 170년경에 기록된 것이기는 하지만 회당의 예배 의식은 매우 보수적으로 발전 및 전승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변화는 있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

16절에서 예수께서 일어셨다는 것은 분명히 예수께 성경 본문에 대해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꾸로 말해 누가복음은 안식일 회당 예배의 요소중 선지서 읽기와 해설에 대한 부분만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예수께서 맡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읽고 해설하는 역할을 맡으셨다는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사역의 영향으로 보인다. 회당안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기적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말씀을 읽고 해설하는 권한을 주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의 두루마리 책이 그에게 건네졌다.
당시 성경은 오늘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다. 쿰란으 1번 동굴에서 나온 이사야 두루마리 A는 회당에서 사용되었을 두루마리 종류의 좋은 견본이다. 그 두루마리는 고문서학적으로 주전 100년경의 것이고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어떤 이들은 율법과 마찬가지로 선지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통독의 형식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증거를 찾는 일은 어려워보인다.
(A. Guilding, The Fourth Gospel and jewish Worship [Oxford: Clarendon, 1960], 125-126, 230-231:C. H. Cave, SE 2/2 [TU 88, 1964] 231-233; L. C. Crockett, JJS 17 [1966] 13-46: J. Heinemann, JJs 19 [1968] 41-48; C. Perrot, RevScRel 47 [1973] 324-340을 참조하라)

게다가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께서 이사야 두루마리 책을 건네 받은 뒤 ‘찾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일 안식일 마다 읽기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찾을 필요가 없다. 그냥 이사야 두루마리를 건네 받은 다음에 그냥 읽으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예수께서는 이사야에서 지금의 자신의 상황과 청중들의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씀을 찾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이제 예수께서 이사야서을 통하여 놀라운 선언을 하신다.

참고 서적:

누가복음1, 대럴 벅 저, 신지철 옮김.

앵커바이블 누가복음1​, 조셉 A, 피츠마이어 저, 이두희·황의무 옮김.

Nicnt 누가복음​, 조엘 B.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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