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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 16절 - 30절 18절과 19절, 예수의 사명에 대한 설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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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6-10-24 22:29 조회2,938회 댓글1건

본문

 이사야 의 인용된 말씀

 누가복음 18절, 19절 본문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1-2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3)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헬라어 직역) 주의 성령이 나의 위에 (임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동직과능), 그는 포로들에게 자유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그리고 눈먼사람들을 다시 보게 (공개적으로)선언하기 위해,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하게 하기 위하여, 주의 받으심직한 해(일년, 고정된 일정한 기간)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위해서 나를 보내셨다.

또한 인용문은 이사야 61장 1절-2절 그리고 이사야 58장 6절의 융합이라고 해석한다. NICNT 에서는 예수께서 61장과 58장을 함께 낭독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데럴벅은 이를 누가복음의 저자가 예수께서 회당에서 설교할 때 사용한 이사야서의 본문을 요약해 주고 있다고 이해한다. 왜냐하면 회당의 예배에서 구약 성경을 봉독할 때, 누가복음의 경우처럼 두 본문을 서로 결합시키지 않는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용한 구절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 매우 짧게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본문이 인용한 구절을 해석할 때 이사야 61장과 58장의 해당 구절을 모두 사용한 것은 본다.  그리고 누가 저자는 가장 핵심적인 말씀만을 여기에 기록했다는 것이다. 데럴벅의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61장과 58장은 자유라는 주제가 한가지이다.
61장은 하나님이 보내신 한 사람으로 인해 주어지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한다. 5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억압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담겨 있다. 그러하기에 본문에서 61장과 58장이 하나로 융합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박는 이들을 자유케 하는 데 실패 했으나 예수께서 실행에 옮기고 계신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희년에 대한 묘사로 우리의 생각을 이끈다. (레 25:8-17)
예수께서 이사야 인용을 통해서 의도하신 것은 새로운 신앙공동체 안에서 영적이며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pilgrim 1981: 64-84)

유대인들의 종말론관.

이사야 61장에 대한 당시 유대교의 이해는 새로운 종말론적인 시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묘사해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유대교의 랍비 문헌에서 이 본문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은 이 해석이 오래된 것이며 또한 전승안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11QMelch 은 사 61장을 멜기세덱에게 적용시킨다. J. A. Sanders 1975:89-91(샌더스는 1QH 18.14-15를 추가한다. M. Miller 1969, Nolland 1989: 196(놀랜드는 cd 2.12와 1QM 11.7을 언급한다) 1QM 11.7에서 해당 인물은 제사장과 메시아의 특성을 지진 것으로 묘사한다. J. A Sanders 1975: 83-88. 샌더스는 여기서 6가지 본문들을 언급한다. 그 가운데 3가지는 종말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사61장은 말 3;1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께서 낭독하시는 이사야 말씀을 들으며 앞으로 올 종말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세계를 참여할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의 종말론에 대한 이해는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격한 흥분한 반응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은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주의 성령이 나의 위에 (임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동직과능)
헬라어 본문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앞에 나오는 동사 그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와 함께 이해되어야 하는지 혹은 뒤에 나오는 그가 나를 보내셨다와 함게 이해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앵커바이블은 이를 나를 보내셨다로 해석하는 데 이는 히브리어 본문을 따랐기 때문이라 밝힌다. 그러나 대두분의 영어번역본들은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에 연결된다고 본다.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라고 해석을 한다면 문장으로 볼 때 뒤에 이어질 글과 분리되어 해석을 할 수 있다. 뒤에는 4가지의 예수님의 사명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 사명들에 앞서서 복음을 전하게하는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라겨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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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이 나의 위에 임하셨다
예수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자기에게 임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행 10:36-38; Schurmann 1969: 229-230)누가복음 3장 22절 이후 예수와 관련해 성령은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왔다. (4:1, 15), 성령이 예수 위에 임재해 있다는 것은 예수가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예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선택된 것이다. (tiede 1980: 43-44)
 성령이 예수 위에 임재해 있다는 것은 예수가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예수가 특별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곧, 예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선택된 것이다. 예수의 임무는 헬라어 문장으로 볼 때 4개의 부정사로 나타나 있다.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 까? 돈이 부족한 사람 아니면 예수에게 긍정적으로 가장 잘 반응하는 사람들인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당장에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전하시는 장소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이는 회당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께선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셨다. 그럼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한 사람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할 때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수 있다. (고전 1:36-29)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가장 잘 반응하는 사람들로 해석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께서 선지자와 선새으로 강조하는 것과도  매우 잘 어울릳. (lieteld 1984:897; 신 18:18; 행 3:22, 7:32, 52; 눅4:24, 7:16, 39, 9:8, 19, 13:33, 24:19)그리고 누가복음 3:18절을 연상시켜 예수와 예수의 선구자 세례 요한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암시해준다.

 

기름 부움의 의미는 왕과 선지자의 의미한다.
예수의 세례 사건에서 예수의 사역은 서지자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왕적인 측면에서도 조명된다.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온 음성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이사야 42장과 시편 2편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 즉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잘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지자로서, 왕으로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하나님이 예수님읠 보내신 4가지 이유... 설명.
보내셨다. 완료시상)는 “그가 나를 보내셨다”(그래서 그 결과로 내가 여기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쓰인 보내셨다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보낸다”는 일반적인 말과 다르다. 그래서 신약성서에서 대부분 이 말은 보내는 사람을 대표하여 대리권을 주어 보낸다는 부차적인 개념도 지니고 있다. 이것에 대한 철저한 논증은 the article of Rengstorf on ajpostevllw in Kittel's Theolog, isches Worterbuch zum Neuen Testament를 참조하라.

1)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
구약 성경에서 포로들은 대체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추방된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때때로 포로들이라는 표현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포로로 잡혀갔다는 관점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9신 28-32장 시 79:11, 26:1, 사 42:7; kittel, tdnt 1:196)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는 dEjs 의미인가? 당연힌 죄와 영적인 측면에서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놓임을 받는 것을 뜻한다. (눅 1:77, 7:47, 24:47; 행 2:38, 5:31, 10:43, 13:38, 26:18; pilgrim 1981: 68) 이 이사야 에언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예수께서 본문에서 선언하셨다. 만약에 정치적인 부분이 포로 즉 로마의 포로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아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중에도 그리고 그가 승천하신 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기 전까지는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뿐인가? 그리고 교회에 대한 억압은 종말때지 있을 것이라고 계시록은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은 영역에서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다. 외부적인 부분에서 포로됨은 존재할지 모르겠으나 신분상으로는 하나님께속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좀 어려운 말이다.

2)눈먼 사람들이 다시 볼 수 있게 선포하신다.
눈먼 사람들은 실제 눈먼 장애인을 뜻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의미로서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다것을  포함하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중 시각 장애인을 고치신 것으로 보아서 물리적인 것을 말함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영적인 분별력에 관하여 1:77-79, 8:10, 10:23-24, 18:41-43에 언급한다. 이 구절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하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3)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한다.
이사야 58:6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 58:6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비와 공의를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다. 반면에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천하지 않았던 것을 실행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거을 사랑으로 채워 줄 것이다. 또다시 이것은 예수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드을 찾아가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그려준다. 억눌려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불공평한 것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pilgrim 1981: 70)

4) 주의 받으심직한  해(일년, 고정된 일정한 기간)를
이사야 61:2 에 있는 구절이다. 곧 희년에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이미지가 다시 등장한다. (또한 희년에 대한 개념은 6:2와 사 49:8에도 나타난다) 예수의 역할은 구원대해서 선포할 뿐만 아니라 또한 마침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예수의 사명을 이와 같이 묘사하는 것은 예수가 종말론적인 선지자와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사야에서 묘사된 구원이 포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희년은 하나님의 새시대가 다가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19절에서 주의 은혜의 해가 인용된 것은 희년과 관련된 율법의 요구가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서 61장에 있는 하나님의 신원이 본문에서는 빠져 있다. 이것은 지극히 의도적이다. 왜그랬을 까를 생각해보면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종말론의 특성 때문으로 판단한다. 신약성경의 종말론은 이미/아직 독특한 가르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4장 24-27경고의 메시지를 들려주기까지 심판에 대하여 암시하는 것을 미루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둘다 가능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소게서 이미/아직의 의미가 더 다가온다) 율법의 요구가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때는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일 것이다.  오히려 19절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묘사해 준다. 곧, 자기가 임명하신 대리자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영적, 신체적 측면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을 이 절은 보여준다. 희년의 사상과 비유하면서 19절은 예수가 예수가 죄 사함과 구원을 베푼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이것은 이사야 61장 1-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의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참고 서적
누가복음1, 대럴 벅 저, 신지철 옮김.

앵커바이블 누가복음1​, 조셉 A, 피츠마이어 저, 이두희·황의무 옮김.

Nicnt 누가복음​, 조엘 B. 그린

 

댓글목록

김혜경님의 댓글

김혜경 작성일

글이 안올라와 걱정했는데..다시보니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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