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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 16절 - 30절 20절과 30절, 예수의 사명에 대한 설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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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6-11-20 19:03 조회1,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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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헬라어직역)그를 그는 그 책을 덮으시고 회당 직원에게 되돌려 주시고는 앉았다. 그리고 회당에 있는 모든 눈들이 그에게 쏠렸다(동직미능)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헬라어 직역)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시작했다. 오늘 너희의 귀들안에 이 글이 성취되었다.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헬라어 지역)그리고 모두가 그를 증거했다(동직미능)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들에 기이히 여겼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7)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반드시 너희가 이 속담을 내게 말할 것이다. ‘의원아, 너자신을 고치라’, 우리가 들었던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라고 말할 것이다. )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8)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가 그는 말했다. ‘진실로(아멘)내가 말한다. 어떤 환영받는 선지자는 그의 고향에서 없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 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헬라어 직역)그러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에 엘리야 시대에 많은 과부가 있었다. 하늘이 3년 그리고 6개월 닫혀졌을 때, 흉년이 온 땅에 발생했을 때,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헬라어 직역)그러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이스라엘에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많은 한센병환자들이 있었다 , 그리고 그들중 한 사람도 깨끗함을 입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다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들이 이것을 들었을 때 모두가 분노가 가득차졌다.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들이 일어나서 그를 동네 박으로 쫓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기 위해서 그들의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떨러지까지 끌고 갔다.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헬라어 직역)그러나 그 자신은 그들 가운데를 지나서 횡단했다.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헬라어직역)그를 그는 그 책을 덮으시고 회당 직원에게 되돌려 주시고는 앉았다. 그리고 회당에 있는 모든 눈들이 그에게 쏠렸다(동직미능)

20절은 당시 회당의 말씀을 해설할 때 방식을 잘 보여준다.
당시 성경의 재료는 파피루스나 가죽이었다.  그래서 개인이 성경을 소유하기에는 부자가 아니하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예수께서 이사야 말씀을 읽으시고는 다시 두루마리로 된 성경을 맡은 자에게 돌려주셨다. 그리고 앉으셨다.
말씀을 가르치는 방식에서도 또한  오늘날 교회의 방식과도 다르다.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자가 말씀을 해설할 때는 일어서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시 설교자가 말씀을 해설할 때는 앉아서 가르치는 것이 관습이었다. ( 눅 5;3; 마 5:1, 23:2, 26:55; 막 4:1; Danker 1988: 107, C. Schneider, TDNT 3:443)
예수께선 당시의 관습에 따라 가르치기 위해 앉으셨다.
그리고 회당에 있는 모든 눈들이 그에게 쏠렸다는 말씀은 그 회당에 모인 상황을 아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회당 예배의 절차를 보았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말씀을 낭독한 사람이 그 말씀을 해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회당안 사람들은 소문을 통해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들어 알고 있었다.
회당 안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어떤 해설이 나올지 숨을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회당은 순간 조용해졌다.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헬라어 직역)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시작했다. 오늘 너희의 귀들안에 이 글이 성취되어졌다(완료 수동태).
오늘
누가는 예수님의 많은 말씀들중에 가장 핵심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 이사야 말씀은 바로 회당에서 말씀이 전해지는 순간에 오늘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란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적어도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첫 번째로 현재 보문의 말씀에서 이사야의 말씀이 오늘 예수님 당신을 통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이는 헬라어의 문법적인 부분이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루어졌다. 헬라어 동사는 현재완료 시제인데 오늘이란 단어와 더불어 현재 시제를 뜻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marshall 1978:185)
두 번째로 특정한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지금’을 의미한다.
구원이란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시대에만 제한 된 것이 아니라 교회시대에도 성취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행 1:16; 3:18

예수께선 유대인들이 익히 알고 종말 즉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을 의미하는 이사야 말씀이 자신을 통해 이루졌다고 하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대대로 그렇게 들어오던 말씀이 예수를 통해 자신의 눈앞에서 성취되어 버린 것이다.
또 한가지 그 일부 유대인들은 61장의 그 사람이 메시아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일부 사람들에게 메시아로 소개를 하고 있는 셈이다.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헬라어 직역)그리고 모두가 그를 증거했다(동직미능)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의 말씀들에 놀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기이히 여기다 ->놀랐다.
기이히 여기다는 헬라어 단어로 볼 때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기이히 여기다이다. 비평, 의심, 혹은 비난이 섞인 놀라움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이 섞인 감탄과 존경을 의미할 수 있다.
문맥으로 파악할 때 기쁨이 섞인 감탄과 존경의 의미로서 놀라의 의미를 뜻한다.


은혜로운 말-> 은혜로운 말씀들
개역성경은 은혜로운 말이라고 단수를 사용하나 헬라어 본문에서는 은혜로운 말씀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한다. 그리고 모든 영어 번역본들도 복수를 사용한다.
이 복수를 사용했다는 것은 예수께서 21절의 말씀 말고도 더 많은 내용을 말씀 했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해지게 한다.
그리고 데럴벅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것에서  이사야서 본문에 대해서 더 많이 설명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Alford 1874: 479, Marshall 1978: 185, Plummer 1896: 123) 또한 헬라어 본문은 21절에서 예수께서 말하기를 시작했다라고 표현한다. 시작하다라는 표현은 개역성경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글 번역에서는 생략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시작하다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21절에서 예수께서는 한 마디만 했던 것이 아니라 이사야 말씀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누가는 지면상 그 말씀이 성취에 관하여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적절해 보인다.

문자적으로 은혜의 말이다. 이 말은 청중을 사로잡는 예수님의 웅변을 뜻할 수도 있고 혹은 (내용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호의/은혜를 전달하는 말을 표현할 수도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구절로 인해 청중을 사로잡는 예수님의 웅변을 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 큰 증거가 되지 않는 듯 하다. 왜냐하면 단순히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의 입장에서 계시기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호의/은헤를 전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청중을 사로잡는 예수님의 웅변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사야 말씀에 대한 해설에 대하여 감동을 입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다음절의 에수님의 반응로 볼 때 이 질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 질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평범한 사람의 아들이 감히 이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느가이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예수께서 회당에서 하신 많은 만들중에 지극히 일부분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사야 글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회당에 모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는 메시아다라는 주장과 같다. 그럼르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말은 수긍이 갈 수 있다. 29년동안 예수의 성장기를 보아왔던 고향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의 가족 관계를 훤히 알고 있던 청중은 결국 예수님을 업신여기게 된다.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7)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반드시 너희가 이 속담을 내게 말할 것이다. ‘의원아, 너 자신을 고치라’, 우리가 들었던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라고 말할 것이다. )


의원아, 너자신을 고치라
너는 스스로 공언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보여 주어라 의 의미다
이어지는 구절이 이를 잘 드러낸다.
‘우리가 들었던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예수는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이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이사야 61장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임을  믿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예수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기 전 까지, 사람들은 믿기를 머뭇거리고 있다.
지금 예수께서 유대인의 마음을 알아채시고 그들의 마음에 감추인 실재 마음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놀랐을 것이다.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가 그는 말했다. ‘진실로(아멘)내가 말한다. 어떤 환영받는 선지자는 그의 고향에서 없다.’

진실로=아멘
진실로라는 말은 아람어로 아멘이다. 독특한 점은 신약성경에서 말하다 앞에 아멘을 사용하는 경우는 예수님의 말씀하신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누구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nicnt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 아멘이라는 단어의 독특성을 설명하며 예수님의 말씀의 신실성과 함께 그의 하나님의 아버지의 권위가운데 설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이 구절은 예수께서 자신이 선지자라고 분명하게 밝히시는 부분이다. 25-27에 이어는 엘리야, 엘리사 선지사들과 이어지게 한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종종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부당했다. 이점은 예수께서도 다르지 않다. 이것이 얼마나 확실한지 아멘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보증하신다.
이는 고향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예수님의 설명이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 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25헬라어 직역)그러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에 엘리야 시대에 많은 과부가 있었다. 하늘이 3년 그리고 6개월 닫혀졌을 때(수동태), 흉년이 온 땅에 발생했을 때,
26. 헬라어 직역)그러나  엘리야가 그 중 어떤 여인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수동태)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헬라어 직역)그리고 이스라엘에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많은 한센병환자들이 있었다 , 그리고 그들중 한 사람도 깨끗함을 입지 못하고(수동태)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었다고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 소문이란 은혜로운 말씀들과 그리고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들이 말이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말씀이 자신을 통해 이루졌다라는 것은 그의 메시아 됨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 됨을 인정하고 있지 아니한다.  구원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심각한 반대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신 것을 믿는것과 그가 메시아되심을 믿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로부터 구원을 가져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25절에서 개역성경은 생략하지만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 접속사가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인정을 받지 아니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이다. 그럼으로 너희들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자 한다.
이후에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로 돌아가신다. 왜냐하면 역사에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역사적 사실을 통해 회당안 사람들이 깨우치기를 바랬던 것을 보인다.


엘리야 시대의 배경은 열왕기상 17-18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땅에 가뭄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가뭄의 기간동안 굶어 죽지 아니하게 하려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방인이었던 이방인 시돈땅에  과부에게 보내신다.
엘리사 시대의 배경은 열왕기하 5:1-14의 말씀이다.

수동태의 부정 인칭대명사 의미
수동태-닫힌(4:25), 보냄을 받은 4:26, 깨끗함을 받은 4:27
부정 인칭대명사-우데미안(어떤 여인에게도 -이 아니다 4:26)
            우데이스(어떤 남자도 -이 아니다4:27)
이 수동태들은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셔서,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지 않으셨음을 알려준다. 지나간 이스라엘 역사에서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불신앙은 하나님에게 멀어지게 할 것이다.
부정 인칭대명사들은 그 당시 선지자들을 통해서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하나님에게서 긍정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해준다.

엘리야 시대와 엘리사 시대의 예에 대한 이해 ​

엘리야시대에는 분명하게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드러나 있고 가뭄은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이다. 엘리사시대의 경우는 그런 것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불신앙은 어떤가? 엘리사 시대의 경우 다시말해 열왕기하 5:1-14에 등장하는 여자 아이는 선지자가 한센병 환자를 고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이런 것을 알 정도면 선지자가 한센병을 고칠수 있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럼으로 불신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있던 한센병 환자들은 하나님의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예에서 불순종이라든가 불신앙등은 곁가지일 뿐이다. 예수께서 예를 드신 이유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발생이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 말씀은 성령을 받은 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강하게 설명하고 자 하신것이다. 그 성령을 받은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를 거부했다.물론 자신이 바로 이사야에서 말하는 그 성령을 받은자라는 것은 막무가내로 하시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다른 지역에서 있어왔던 사역이 그의 이사야 말씀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으며 두 번째로  그 사역을 회당안 사람들이 증거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회당안 사람들은 예수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단순히 고향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이라고 하며 그가 하나님의 메시야임을 거부하는 것이다. 단순히 고향에 같이 자란 사람이라 하여 거부하는 것이 틀린 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고향에서 선지자가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속담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선지자에게도 고향이 있으나 고향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아로서 인정하시 않는 것은 이상할 일이 못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회당안 사람들에게 주는 냉철한 권고인셈이다.  엘리야 시대에 한 사람의 과부만이 선지자를 통해 도움을 받았고 그리고 엘리사 시대때 한 사람의 문둥병 환자가 선지자를 통해 치료를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 자신을 거부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인 셈이다.
예수께선 자신이 이사야의 말씀에서 오기로 한 그 메시야임을 믿을 것을 강력하게 말씀고 계신다.
nicnt는 이말씀의 요지를 나사렛 주민과 유대 백성 전체가 그를 약속된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겠다고 명백하고 선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타당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들을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누구든지 이사야 말씀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가 이사야에서 언급한 그 성령받은 자임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2가지 예를 하신 이유이다. ​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들이 이것을 들었을 때 모두가 분노가 가득차졌다.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들이 일어나서 그를 동네 박으로 쫓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기 위해서 그들의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떨러지까지 끌고 갔다.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헬라어 직역)그러나 그 자신은 그들 가운데를 지나서 횡단했다.


회당안이 상황이 갑작스럽게 험악하게 변하고 있음을 ‘모두가 분노가 가득해졌다 라든가 그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기위해서’ 라는 문장이 잘 보여준다.
이와같은 상황은 현대인들에게 보기에 유대인들이 극단적이며 법도 없는 민족으로 보여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며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법적인 행동일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이 율법을 심각하게 위반했을 경우에 그 사람은 재판을 받지 않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처형을 받았다(요 8:59, 10:31; 행 7:54-58, 21:31-32: Plummer 1896:129)
예수께서 하신 엘리야 시대와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두가지 예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두 이방인에 대한 말이다. 이 예를 통해 예수는 자신이 이사야 말씀에서 예언한 그 메시야임을 거부한다면 자신을 통해 주어질 하나님을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 받게 될 것이라는 강한 항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험악한 반응은 두 가지 면에서 보아야 한다
첫 번째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이사야 말씀의 그 메시야일 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다. 이사야 말씀은 종말에 있을 일을 가리킨다고 유대인들도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으로 인해 종말에 이르르면 자신의 민족이 모든 민족들위에 서게 될 것이라는 강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를 들며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의 선민 사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계신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유대인의 소망을 산산조각을 내신 것이다.

그들의 격분은 이 두가지 면을 고려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이해를 할 수있다. 그러나 그들의 격분이 결코 율법적이지 않으며 의롭지도 않고 공평하지 않음은  30절에서 잘 보여준다.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헬라어 직역)그러나 그 자신은 그들 가운데를 지나서 횡단했다.  

 

그들의 격분은 지극히 편협적인 민족주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면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임을 들어내는 행동일 뿐이었다.

 

참고 서적
누가복음1, 대럴 벅 저, 신지철 옮김.

앵커바이블 누가복음1​, 조셉 A, 피츠마이어 저, 이두희·황의무 옮김.

Nicnt 누가복음​, 조엘 B.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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