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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 38절 41절 예수의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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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6-12-04 22:37 조회546회 댓글0건

본문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1)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헬라어 직역)그리고 (지금, 그날 회당을 떠난 후에 ) 그가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서 시몬의 들어가셨다.(동직과능) 그리고(지금)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병에 잡혀 있었다.(동직미능3단)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를 위하여 그에게 간청했다.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2)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헬라어 직역)그리고(그래서, 그리고 나서)그가 그녀 가까이 서서 열병을 혼을 내었다(꾸짓다, 책망하다, 질책하다)(동직과능3단)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떠났다.(동직과능) 그리고(그래서, 그리고나서) 여자가 즉시로 일어나서 그들에게 봉사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그의 왕의 권세를 드러내신후 예수께서는 12제의 시몬의 집에 들어간다.

 

시몬은 현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나중에 12제자중 한 사람으로 베드로라 불리우는 사람이다.
본문 누가복음 에서는 시몬의 집이 가버나움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요한 복음 1:43에서는 벳세다를 안드레와 베드로의 동네로 소개한다. 그래서 해석하기를 요한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출생지를 말한 것이고 마가는 시몬 베드로가 나중에 거주했던 장소였다고 주장한다.

열병에 대하여 용어의 사용처에 대한 이견이 있다. 하나는 이질을 동반 할 수도 있는 고대 의학 전문 용어라는 것이다(BAGD 730-731, BAA 1462, Van Der Loos 1965: 533, K. Weiss, TDNT 6:956-959), Galen, De, Defferenitiis Febrium 1.1, SB 1:479, Hoabrt 1882: 3-5) 또는 고대 의학 전문 용어가 아니며 일반적으로 당시 널리 사용되어 왔던 용어라는 것이다. (Fitzmyer 1981: 550, Cadbury 1962: 194-195, 203; hengel and hengel 1959: 340-341
이러한 이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사이에서만 사용하다가 나중에 일반인들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라고 보는 자연스러 보인다.
고대인들이 열병을 어떻게 치료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 (Van Der Loos 1965: 553-554 및 n. 3)


학자들은 이 누가복음의 이 상황은 마가복음 1;29-31을 의존했다고 확신한다(T. Schramm. Der Markus-Stoff, 85-91) 이러한 확신을 옳다는 전제로 본다면 누가복음의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사건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마가복음 1장 31절에서 열병이라고 사용하는 반면 여기 누가복음에서는 중한 열병이라고 보고한다. 또한 마가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게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하나 여기 누가복음에서 단지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났다고 하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단지 열병을 꾸짖으심으로 열병을 치료하신다.
누가복음의 자신이 책을 저술하는 목적에 따라서 이미 존재했던 마가복음에서 필요한 자료만을 선택적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의도는 혼을 내었다(꾸짓다, 책망하다, 질책하다)에서 드러난다. 이 단어는 35절에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사용하신 것이다. 이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던 일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할 수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던 일은 그의 왕의 권세가 여실히 드러난 장소였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의도는 그리스도의 왕의 권세를 추가하여 설명하려 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누가복음 4장 1절에서 본문의 말씀을 이어 생각해야 이해를 할 수 있다. 나사렛에서 이사야 말씀의 성취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됨을 선포하셨고 가버나움에서 사람들의 그의 말씀에 떨었고 귀신이 그의 꾸짓는 소리에 복종하고 사람에게서 떠난다.(물론 예수께서 귀신의 힘을 빌어 쫓아내신 것이란 것은 아니다 ) 그런데 그의 왕의 권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질병인 열병조차도 그의 명령에 혼비백산에 떠나고 만다. 그리고  8장24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광풍도 그의 말에 복종한다. 왕은 말로서 통치를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왕으로서의 통치는 그 급이 다른 육체를 지닌 왕들과 다르며 또한 그 급이 세상의 임금이라는 사단조차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헬라어 직역)그리고(지금) 해가 질 때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병으로 허약해진 사람들을 그에게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는 한 사람 한사람 위에 손을  엊어서 그들을 고치셨다.(동직미능3단)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
그리고 또한 귀신들이 소리지르며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동직현능2단)’ 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고 있었다(동직미중/수디3단) 그리고(그러나) 그는 그들을 책망하며(혼을 내며, 꾸짖으며, 질책하며) 그들에게 말함을 내버려두지 않았다(허가하지 않았다, 허락하지 않았다)(동직미능3단)

40절에는 예수께서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는 것에 대한 요약적인 설명이 들어있다.

‘고치셨다. 나가고 있었다. 내버려두지 않았다.’ 는 미완료형으로 된 동사로서 지속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예수께 데리고 온 사람은 병자들이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41절은 귀신들이 소리 질러 떠났다고 한다. 병자들중의 일부분이 병과 귀신에 잡혀 있는 것이었을까? 명확히 귀신과 병과의 상관관계를 모르겠지만 본문만으로 볼 때는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치료하는 행위로서의 안수는 유대교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행위이다. (Marshall 1978: 196, Fitzmyer 1981: 553, 1QapGen 20.28-29; lohse, TDNT 9:428, Flusser 1957) 치료하는 행위로서의 안수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예수님의 안수가 치료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이 안수를 치유를 위한 것이기다보는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돌보는 것이나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축복해 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Ernst 1977: 182, Plummer 1896: 138; 창 48:14; fp 9:22-23; 눅 13:13)
그러나 치료하는 행위로서의 안수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치료 행위가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100%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본문은 너무 밀접하게 안수와 치유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질 무렵 전에 사역을 하신 예수께서는 심신이 지쳐 계실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찾아온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안수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개개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해도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버나움 회당에 있던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리고 여기 시몬의 집에서는 귀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또다시 예수께서 귀신들이 더 이상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신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왜 귀신들의 입을 막으셔야만 했을 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사역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셨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맡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예수께선 하나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거부하신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로 알려진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기위해서 온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참 메시아에 대한 정체가 철저하게 숨기워진다.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의 참 메시아 정체를 온전히 이해못하고 유대인의 메시아관에 머물러 예수님을 유대인의 메시아를 강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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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 영을 통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실체를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다. 악의 영들이 예수께 복종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의 권세를 드러내주고 있다. 솔직히 악한 영들을 복종시킬 수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그럼으로 누가복음은 이런 귀신들을 통해 우리에게 그의 참된 정체성을 드러내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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