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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1절-11절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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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6-12-26 13:32 조회1,036회 댓글1건

본문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직역성경) 그리고(now, one day, once)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면에서 몰려 들었다. 그리고 그는(예수) 게넷사렛 호수가에 서 있었다.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직역성경)그리고 그는 호숫가 있는 두 배를 보았다. 그러나 어부들은 배밖에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정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직역성경)그리고 그는 한 배에 오르시며, 그 배는 시몬의 배라, 그에게 육지에서 조금만 배를 몰 것을 요청하셨다. 그리고 그는 배에 앉으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직역성경)그리고(now) 그가 말하는 것을 마치셨을 때 시몬에게 말했다. 깊은 데로 가라 그리고 고기를 잡이를 위해 그물을 내려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고(그러나) 시몬이 대답하며 말했다, 엠피스타타(선생, master)여,  우리들이 밤새도록 지치도록 힘들게 일해서 잡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대로 나는 그물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리고 그들이 이것을 했을 때, 심히 많은 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그물들이 찢어지고 있었다.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그리고(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와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그리고 그들은 두 배를 채웠는데 잠기게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그러나 시몬 베드로가 보았을 때, 그는 말하면 예수의 무릅으로 갑자기 달려들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왜냐하면 그들이 잡은 물고기 포획물앞에  놀라움이 그와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시몬의 동업이었던 세베대의 아들의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했다, 무서워마라 . 이제부터는 너는 사람을 잡을 것이다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그리고 그들은 육지에 배를 정박시켜놓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를 쫓았다.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헬라어 직역) 그리고(now, one day, once)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면에서 몰려 들었다. 그리고 그는(예수) 게넷사렛 호수가에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
예수게 긍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히 예수에게 호기심을 갖고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다 (눅 6:19, 7:9, 8:40, 9:18, 19:3, 23:48)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에게서 온 말씀으로서, 하늘의 아버지의 계시에 기초한 메시지
‘하나님의’ 는 헬라어로 투 데우인데 출처를 나타내는 소유격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의미는 하나님에게서 온 말씀으로서, 하늘의 아버지의 계시에 기초한 메시지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말씀의 원천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지의 권위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마가복음과 마태복음과 비교했을 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틀어 더 많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이 단어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눅 5;1; 8:11, 21; 11:28; 행 4:31; 6:2, 7; 8:14; 11:1; 12:24; 13:5, 7, 44, 46, 48; 16:32; 17:13; 18:11)

게네사렛 호숫가
게네사렛 호숫가는 갈릴리 바다라고도 알려졌다. (마 4:18; 막 1:16) 이호수는 가버나움의 남쪽에 위치한 지명을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게네사렛은 비옥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평야 지대다
(BAGD 156, BAA 312,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2.1 &28, [유대 전쟁기] 3.10.7-8 &&506-521;1 Macc. 11:67). 구약성경에서는 긴네렛 또는 긴네롯이라고 불렸다. (민 34:11; 수 11:2, 19:35; leaney 1958: 123, Marshall 1978: 201)
이호수는 너비가 약 13킬로미터에, 길이가 약 23킬로미터에 이른다.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직역성경)그리고 그는 호숫가 있는 두 척의 배를 보았다. 그러나 어부들은 배밖에 나와서 그물들을 씻고 있었다.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무리를 보시며 가르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을 느끼셨다. 그리고 그는 두 척의 배를 보았다.
두 척의 배의 어부들은  밖에 나와 그물을 씻고 있다고 표현한다. 5절에서 밤새도록 일을 했다는 표현으로 보아 일을 끝내고 그물을 씻어 집에 갈려고 하는 순간이었다고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고기잡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위해서는 E. F. F. Bishop, "Jesus and the Lake," CBQ 13 [1951] 398-414; W. H> Wuellner, The Meaning, 26-63를 보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정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직역성경)그리고 그는 한 배에 오르시며, 그 배는 시몬의 배이다, 그에게 육지에서 조금만 떨어뜨려 줄 것을 요청하셨다. 그리고 그는 배에 앉으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셨다. 데럴벅은 예수께서 베드로를 주목했다라고 하지만 누가복음만을 보았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은 전지 하시기 때문에 누구의 배였는지는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여기 본문만을 놓고 보았을 때 그런 뉘앙스가 전혀 없다.

예수께서 오르신 배의 크기는 약 7-8미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 뒤에 이 배에 두 세명이 더 타기 때문이다. (Ellis 1974: 102)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직역성경)그리고(now) 그가 말하는 것을 마치셨을 때 시몬에게 말했다. 깊은 데로 가라 그리고 너희는 고기를 잡이를 위해 그물들을 내려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라 라고하신 것으로 보아 당시 시몬이 배의 키를 잡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시몬의 배에는 몇 명의 어부가 더 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물을 내리라는 명령의 대상이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시몬한 사람에게만 향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그물이 복수인 것은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야할지 모르겠다. 문자 그대로 보자면 어부개인이 관리가능한 그물이 있어다이다. 그리고 문맥으로 볼 때 하나의 그물을 여러 어부들이 고기를 잡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수님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그가 그의 사역을 위해 시간을 할애히준 대가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처음부터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제자를 삼기위한 것으로 볼 수 도 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고(그러나) 시몬이 대답하며 말했다, 에피스타타(선생, master)여,  우리들이 밤새도록 지치도록 힘들게 일해서 잡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대로 나는 그물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

  

에피스타타(선생, master)여
이 호칭은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나타난다. 이 인사말은 때때로 랍비라는 말 때신에 사용된다. 누가복음 17장 13절의 경우를 제외하고, 제자들은 예수를 부를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8:24, 45, 9;33, 49; Danker 1988: 116, oepke, TDNT 2:622-623, Lohse, TDNT 6:965 n. 40. Glombitza 1958).
예수께서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가르치셨다. 가버나움 회당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왕의 권세를 느꼈듯이 베드로가 그러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베드로의 대답은 두가지로 나뉠 수 있다.
1. 고기잡이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내세움
우리들이 밤새도록 지치도록 힘들게 일해서 잡은 것은 없습니다 라고 베드로는 대답을 했다. 어부의 상식과 경험에는 밤시간에 물고기가 잘 잡힌다. 그러하기에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잡지 못했다. 또한 이러한 베드로의 말속에는 예수님 당신은 가르치기에는 전문가일지 모르지만 고기잡이에는 내가 전문가이다 라는 말과 같다.
2.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
그러나 당신의 말씀대로 나는 그물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
비록 고가잡이에 있어서 예수님보다 전문가라고 할 지라도 선생님의 말씀을 존중하여 그물을 동료들이 그물들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라고 고백한다. 베드로가 어부의 경험과 상식을 무시하고 비전문가인 예수님의 말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베드로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알게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깊은 곳을 키를 돌렸고 동료들은 그물을 바다위로 던졌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리고 그들이 이것을 했을 때, 심히 많은 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그물들이 찢어지고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자 고기가 잡혔다. 뿐만아니 너무 많이 잡혀 그물들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전지함과 전능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물고기들이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라 했는지 아니면 예수께서 물고기를 깊은 곳으로 모이게 했는지는 모른다. 이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앵커바이블 - 막 찢어지려고 하다 로 아직은 찢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기를 두 배에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BDF &323.4)
대럴벅 -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luce 1933: 128, plummer 1896: 144) 그물 속에 잡혀 있는 고기 떼가 너무 무거워 그물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이 오기까지는 버틸만한 그물의 능력이다.

아마도 대럴벅의 해석이 더 타당성이 있어보인다. 어부들은 전문가들이다. 그물의 끈들이 하나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고 있음을 인지한 것으로 보아야하 타당하다.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4)
그리고(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와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그리고 그들은 두 배를 채웠는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몬과 그의 동료들은 다른 배에 있던 동료들을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와서 두 배에 물고기를 실었다.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두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았을 경우 이와 같이 팀을 이루어 일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Hauck, TDNT 3:804 n. 49)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5)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그러나 시몬 베드로가 보았을 때, 그는 말하면 예수의 무릅으로 갑자기 달려들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예수님 무릅으로 갑자가 달려 들었다. 9절을 보면 이렇게 이유를 놀라움의 그들을 에워쌌다고 표현을 한다. 이 어부들은 이 광경앞에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살펴보자
주여.
이 칭호는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역하하신 다는 것과 더불어 예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베드로의 고백을 나타낸다.
여기서의 주여는 선생님에 해당하는 정중한 인사말이다. 이 칭호는 보다 더 높은 신분과 권위를 지닌 어떤 대상을 인정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무릅아래 엎드리는 베드로의 행위와 이 호칭이 합쳐져 8절에서 이 칭호는 정중한 인사말을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주권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신성을 완벽하게 이했느냐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8;25절에서는 제자들이 여전히 예수가 누구인지 논의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확실하게 인지하게 된 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였다.
여기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베드로가 예수께 엎드리면서 자신을 떠날 것을 요청한다.
어부로서 전문가인 베드로는 비전문가이신 예수님의 말대로 했을 때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어획량은 충격이상으로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가버나움에서 기적을 맞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둘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하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면을 볼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계속 붙들어 둔다면 자신은 편안하게 물고기를 낚으며 돈을 벌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놀라운 광경속에 자신의 죄를 바라본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지를 못했을지라도 구약의 엘리야나 엘리사 정도는 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을 기억했고 선지자들을 통해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내리신 벌들을 기억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베드로는 참으로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일도 모르겠다.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6)
왜냐하면 그들이 잡은 물고기 포획물앞에  놀라움이 그와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시몬의 동업자인 세베대의 아들의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했다, 무서워마라 . 이제부터는 너는 사람을 잡을 것이다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그리고 그들은 육지에 배를 정박시켜놓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를 쫓았다.

9-10은 베드로가 왜 예수님앞에 그러한 반응을 보였는지 보여준다. 그 이유는 비상식적인방법으로 인해 어획량으로 봄을 통해 놀라움이 베드로를 감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움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무서워 마라
이러한 베드로의 애절함을 보신 예수께서는 무서워말라 라고 위로하신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사람들을 잡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제자로의 부르심이다. 그리고 이것은 베드로에게만 하신 것이 아님이 11절에서 베드로의 다른 동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데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위로는 베드로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인 두 배에서 일하던 다른 동료들에게 임해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에게 하신 위로는 다른 동료들에게 하신 것과 같다.
사복음서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활동이 눈에 띄게 드러나 있지만 그가 대표라고 여길 만한  것은 없다.
여기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대표로 인정했다고 보다는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앞에 무릅을 끊고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기에 그에게 먼저 말을 했다는 것이 판단하는 것이 옳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가버나움 회당 안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왕의 권세를 느꼈던 것 처럼 갈릴리 바닷가에 있었던 사람들도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나사렛 회당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지만 여기서는 전혀 그런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호의적이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게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들을 내리라 는 명령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순종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본문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삼는 과정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도 가버나움에서도 제자를 삼지 않으셨다. 한가지 추측을 해볼 것은 베드로의 고백에 있지 않을 까라고 생각해본다. '나를 떠나소서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 ​ 예수께서 오히려 이런 사람을 제자로 삼으셨다. 아마도 이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알았다. (물론 이것은 실제적인 예수님의 정체성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했고 그리고 때로눈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베드로는 어마어마한 어획량에 구약의 선지자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앞에 서 있는 선지자는 자신과 함께 있다가는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베드로의 이러한 고백은 예수님도 인정하신다. 그래서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자신의 제자가 되어 사람을 낚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를 그의 제자되게 함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

 

 

댓글목록

김혜경님의 댓글

김혜경 작성일

글을 좀더 자주 올려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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