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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17절-27절 중풍병자 치유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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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7-01-08 19:30 조회2,347회 댓글1건

본문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1)
그리고(지금) 그가 가르치실 때 하루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그리고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의 모든 마을에서 나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교법사들)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고 있었다.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그리고 보라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려 있었던 한 사람을 침상에 메고와서 그를 들여놓고자 애썼다 그를 그(예수)앞에 놓고자 애썼다.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2) 기와를 벗기고(3)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그러나(그리고) 그들은 무리 때문에 그를 메고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해서,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침상과 함께 그(병자)를 예수님 앞에 가운데로 내렸다.
20. 예수께서 저희(4)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리고 그(예수께서)가 그들의 믿음을 보셨을 때  말했다. ‘이 사람아, 너의 죄들이 너에게 용서를 받았다.(동직완수3복)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5)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 이 사람이 누군데 하나님을 모독하는가? 하나님 한분 외에 누가 죄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의 의논을 아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동직완수3복)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6)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러나 너희가 인자가 땅에서 죄들을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겠다’
그가 중풍병이 걸린 사람에게 말씀하셨다,‘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리고 네 침상을 들어서 너의 집으로 가라’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긔고 곧 그가 그들 앞에서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집으로 갔다.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그리고 놀라움이 모든사람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 기이한 일들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두려움으로 채워졌다.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그리고(지금) 그가 가르치실 때 하루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의 모든 마을에서 나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교법사들)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가 보여주듯이 지금 이상황은 앞의 문둥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이후 여러날이 지났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장소는 생략하고 있다. 본문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주후 1세기의 유대교안에서 4개의 종교 그룹 중 하나였다. 나머지 세 그룹은 사두개파와 에세네파와 열심당이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5.9 &171, 13.10.6 &&293-298, 17:2.4-3.1 &&41-51., 18.1.2 &11, 유대전쟁기 2.8.14 &&162-163, c. f. Evans 1990: 298-299)
바리새파는 제사장들이 아니며, 분리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평신도 그룹이다. 이 종파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게 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장로들의 유전이라것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marshall 1978: 212, Fitzmyer 1981: 581)
교법사들은 종교에 대한 법률가들이었다. 교법사들은 성경 이외의 전승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들의 동기는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새로운 배경과 상황속에서 올바르게 보존하고 구체적으로 지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들은 흔히 서기관이라고 불렸다. 미쉬나가 장로들의 유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탈무드는 미쉬나에 대한 주석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쉬나가 주후 2세기 후반의 문서이기에 탈무드보다는 미쉬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규정들은 예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율법과 상관없는 경우도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며 신앙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열심을 가지고 유대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후에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그의 죄들이 용서를 받았다고 하자 신성모독이 말이라고 여기는 면에서 잘 알 수 있다. 본문은 굉장히 신앙적이나 신앙적이지 않은 이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그리고 보라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려 있었던 한 사람을 침상에 메고와서 그를 들여놓고자 애썼다 그를 그(예수)앞에 놓고자 애썼다.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2) 기와를 벗기고(3)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그러나(그리고) 그들은 무리 때문에 그를 메고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해서,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침상과 함께 그(병자)를 예수님 앞에 가운데로 내렸다.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의 모든 마을에서 나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교법사들)이 예수 앞에 나와 가르침받고 있었다 그만큼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이스라엘 지역에 넓게 퍼졌음을 알려준다. 당연히 중풍병에 걸려 있는 친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와함께한 하나님의 능력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병에 걸린 그의 친구를 침대채로 예수께서 계신 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길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계단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을 드러내고 구멍을 뚫고 그 환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는다.
팔레스타인에서 대체로 집은 이층으로 지어졌다. 지붕 밑의 공간은 이층의 역할을 했다. 때때로 지붕으로 가는 계단은 건물 밖에 설치되어 있었다.(Satrai 1976a: 730-732)대체로 지붕은 평평하게 만들어졌다. 땅에서 약 2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었다. 돌 위에 또는 흙벽 위에 들보가 가로질러져 있었다. 그 위에 갈대와 가시나무와 5-8센티미터의 진흙을 섞어서 깔았다.
본문은 집의 주인이 항의하거나,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 또는 다른 사람들의 항의가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런 행동은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이 든다. 마치 급한 환자를 싣고가는 앰블런스가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속도위반을 해도 범죄가 되지 않듯이 말이다.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리고 그(예수께서)가 그들의 믿음을 보셨을 때  말했다. ‘이 사람아, 너의 죄들이  용서를 받았다.(동직완수3복)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5)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 이 사람이 누군데 하나님을 모독하는가? 하나님 한분 외에 누가 죄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안드로페인데 경멸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Marhall 1978: 213) 이 호칭은 친구여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bagd 68 &1a, baa135 &1a)
용서를 받았다는 현재완료수동태로서 하나님이 중풍병자의 병을 낫게 하시고, 도한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과 이 중풍병자가 이미 죄사함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율법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했다. 죄를 사하는 권세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
1. 이 신성모독하는 자가 누구냐?
2.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
물론 이 질문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한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에수께서 하나님의 특권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 어떤 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위엄을 손상시킨다고 이해한다. 죄를 사해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예수의 행위와 주장에 대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이해는 대체로 옳다. 하지만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전달해주는 대리자가 있다는 선례가 있다.(삼하 12:13. Godet 1875: 1.267, Marshall 1978: 214, Plummer 1890: 155, Ernst 1977: 193) 그러나 죄를 용서해 주는 일 그 자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고유의 일이다. (출 34:7; 시 103: 3, 12; 사 1:18, 43:25; 렘 31:34; hendriksen 1978: 297)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하실 때 동사는 수동태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다것은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주장하고, 또한 예수가 어떤 종교 전통에도 속해 있지 않으며, 나아가전문적인 율법 교육을 받지 않은 것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의 의논을 완전히 아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예수께서 유대 사회의 4대 종파의 한 그룹으로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생각하는 것을 아셨다.
완전히 아시고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유대교 지도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인식 능력이 자연적인 통찰력 이상을 암시해준다. 적어도 예수는 선지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장 24절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지닌 권세에 대해서 인자라는 개념과 연결시켜서 말하다. 이말은 예수가 선지자를 능가하는 존재라는 것은 부드럽게 밝힌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질문을 하신다.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동직완수3복)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눈으로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눈으로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도 더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찰자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죄가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쉽다. 왜냐하면 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주장은 단지 빈말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주장은 사실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예수의 선언을 뒷받침하는 것인가? 이와같이 에수는 이적을 통한 치유사건을 자기 자신의 존재와 관련된 영적인 메시지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예수께서 보여주는 것처럼, 치유사건은 죄사함에 대한 선언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밝혀 줄 것이다.
예수님의 이와같은 이의 제기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이적적인 특징은 예수께 대한 초대 교회의 묘사에서 쉽게 지워 버릴 수 있는 사소한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준다. 이적 사건들은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적 사건들은 에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곧 이적 사건들은 예수의 주장들이 옳다는 것을 실제로 입증해 준다. 또한 이적 사건들은 보다 깊은 영적인 실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중풍병자를 치유한 일과 죄사함을 서로 대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적 사건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라들이 전혀 변명하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적들은 예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증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러나 너희가 인자가 땅에서 죄들을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겠다’ 그가 중풍병이 걸린 사람에게 말씀하셨다,‘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리고 네 침상을 들어서 너의 집으로 가라’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긔고 곧 그가 그들 앞에서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집으로 갔다.
누가는 인자라는 단어를 25번 사용한다. 24절에서 인자라는 용어가 어떤 이적 사건과 직접 연결되어 언급되는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다. 아람어에서 이 용어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나 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인자는 다니엘서 7장 13-14절 언급되는데 어떤 인물을 가리키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서 주어진 것으로서 인자의 권세는 광범위하다. 왜냐하면 이 인물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와서 모든 성도들을 신원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들을 통해 예수는 자기 자신을 인자라고 계시하시며, 또한 자신이 지닌 권세의 범위에 대해서 알려준다. 만약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게 된다면, 이 이적은 인자가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것이다. 만약에 유일 무이한 권세를 지니고 있다면, 인자는 바로 하나님의 유일한 대리자로서 구원을 성취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이적 사건이 제시해주는 답변이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세가지 명령을 한다.
일어나라
네 침상을 가지라
집으로 가라
그리고 그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치유가 되어 그의 침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간다.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과 누가복음의 독자들은 이 이적 사건이 예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지 깊이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죄에 대한 권세를 지니고 있는 에수의 주장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하게 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를 통해서 역사하시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예수가 중풍병자를 낫게 한 이적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수의 권위있는 말을 통해 이적은 이루어졌다. 따라서 예수에 대해서 사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진다.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과 누가복음의 독자들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스스로 진지하게 숙고해야 했을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그리고 놀라움이 모든 사람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 기이한 일들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두려움으로 채워졌다.
사람들이 기이한 일들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말은 헬라어로 파라독사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오직 이곳에서만 사용된다. 즉 생각을 뛰어 넘는 어떤 것, 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뜻한다. 이 용어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저서에도 나타난다.(유대 고재서, 18.3.3 &&63-64, F.F.Bruce 1974: 36-41). 마태복음 9장 8절에서 무리의 놀람 또는 두려움은 이와 같은 권능이 사람엑 주어진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무리가 이 이적 사건의 독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예수게서 유일무이한 특서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예수의 유일무이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그래도 복음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 때문에 이와같은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보고한다.

본문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를 통해 역사해서 중풍병자가 치유를 받았다는 사실을 넘어서 예수에 대해서 보다 중요한 진리를 깨우쳐 준다. 이 치유사건은 예수님 자신에게 죄를 사해주는 권세가 있다는 예수의 주장을 입증해준다.
그럼으로 독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지닌 예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예수는 신성 모독자인가? 아니면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지닌 존재로서,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은 자인가? 과연 하나님은 어떤 사기꾼에게 이와같은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나게 하시겠는가? 아니면 예수의 배후에는 어떤 존재가 잇는 것인가?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ㅣ겠다고 약속하신 분인가? 이 이적 사건은 사람들에게 이와같은 질문들을 제시한다. 각 사람은 스스로 이 질문들에 답변해야 한다. 이 사건은 어떤 사람이 답변을 회피한 채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을 묵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김혜경님의 댓글

김혜경 작성일

일주일 한번씩 올리니까...규착성있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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