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27절-32절 예수께서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레위의 잔치에서 죄인을 구원할 자임을 밝히시다 >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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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27절-32절 예수께서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레위의 잔치에서 죄인을 구원할 자임을 밝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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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루교회 작성일17-01-15 19:45 조회4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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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쫓으라 하시니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후에 그는 나가셨다. 그리고 그는 레위라 불리우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셨다.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쫓으니라 그리고 그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쫓으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서 그를 쫓았다(동직미능3단)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레위가 그를(예수)를 위하여 그의 집에서 큰 만찬(feast, banquest,reception,entertainment)를 벌였다, 그리고 많은 수의 세라와 다른 사람들이 그들(예수님의 일행)과 함께 업드려 있었다(먹고 있었다)

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헬라어 직역)그리고(그러나)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은 ‘어찌하여 너희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게 먹고 마시느냐?’ 라고 말하면서,그의(예수) 제자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반대하여 말했다(동직미능3복)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헬라어 직역)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며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들은 의사가 필요없다. 그러나 병든 자들은 필요하다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헬라어 직역)나는 의인을 부르기 위해 오지 않았다(동직완능1단) 그러나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27.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쫓으라 하시니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 후에 그는 나가셨다. 그리고 그는 레위라 불리우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셨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나를 쫓으라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9:9과 비교해 보면 레위는 마태와 동일한 인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nicnt는 레위는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를 섬기는 세리였다(가버나움은 안디바가 다스리는 영토에 위치하였다)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앵커바이블과 데럴벅은 세리장을 위해 일하는 자로 설명한다.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심사숙고할 문제로 보인다.

나가셨다는  5:19에서 언급된 집에서 나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한 동네(5;12)에서 나갔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쫓으니라

헬라어 직역)그리고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서 그를 쫓았다(동직미능3단)

모든 것을 포기하다란 의미를 앵커바이블은 세관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레위는 다른 일을 위해 자신의 직장을 떠난 것으로  판단한다. 적어도 28절에서는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29절에서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를 벌이니 그의 판단이 옳아 보인다.

미완료 시제인 '쫓았다'는 그를 따르고 있는 중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며 그의 행위의 계속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마자 쫓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왔음을 보여준다. 12제가 예수님의 부활이전 까지는 그의 참 본질을 몰랐고 그리고 그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전혀 예상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볼 때 이 당시 예수님의 부르심을 레위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해했을 가망성이 있다. 그 정치적 부분이라는 것은 유대인의 오랜 갈망이었던 유대민족의 부흥의 출발이 되는 메시아의 등장이다. 유대인들의 메시아는 오직 유대 민족만을 위한 정치적 군주였다. 물론 이러한 유대인들의 메시아 관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후 산산조작 났지만 말이다.  적어도 여기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동기를 묻는다면 유대인들의 메시아 관과 별반 다를바 없으며 그는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실것이며 그 날이 이르면 예수님과 함께 고생했던 자신도 한자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세리자리정도는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그리고 레위가 그를(예수)를 위하여 그의 집에서 큰 만찬(feast, banquest,reception,entertainment)를 베풀었다, 그리고 많은 수의 세라와 다른 사람들이 그들(예수님의 일행)과 함께 업드려 있었다(먹고 있었다)

얻드려 있다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잔치에서 먹을 때 하는 행동이다. ​

당시의 세리들은 토색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음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세례요한은 무엇을 하면되겠느냐는 세리들의 질문에 받아야 그 이상의 세금을 받지 말라고 가르친다. 세리들은 받아야할 세금 그 이상을 거두었음에 틀림이 없다. 여기 레위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님 일행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예수님을 위한 큰 만찬을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데럴벅은 세리들을 소외계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소외받을 만한 행동을 하였음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토색이라는 것을 통해 부를 축척한 그들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레위를 높이 평가함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가 착복한 돈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비슷한 경우가 누가복음 19;2에 있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자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말한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이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레위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삭개오도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겠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에는 결코 유대인들의 메시아관 이상을 넘지 못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 12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전혀 예상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후에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을 때 한 자리를 왕이신 예수께 얻을 려는 생각이 깊다고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 세리들의 부정축재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내면의 상태가 가난했음을 성전에서 바리새인과 어느 세리의 기도를 통해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었던 바리새인보다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던 세리를 더 의롭다고 평가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선 그런 세리 레위를 제자로 받으셨고 그가 베푼 잔치에 참가하여 다른 세리들과 어울리셨다. 이렇게 하심은 그들의 중심을 아셨기 때문이라고 보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부족함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그런 자세말이다.

30절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어떠한가? 신약성경은 그들에 대한 평가가 절대로 호의적이지 않으며 예수님과 적대적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잘못되었는가? 그들은 적어도 바른생활장이들이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믿으며 율법을 사모하여 거기에다 장로들의 유전을 더하여 철저하게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다.(물론 철저하게 지키지 못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마음으로는 지킬려고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문제점이었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이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완성한 거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죄가 가득한 것을 그들 스스로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하나님앞에 죄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하나님께 의롭다고 평가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선 아담의 범죄때부터 인류를 구원할 구주가 그리스도 예수임을 드러내신 바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을 통한 의로움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세리들은 종교적으로 혹은 착복으로 인해 백성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았지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오히려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리들이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나 모두가 예수가 필요하다.

 

 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3)

그리고(그러나)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은 ‘어찌하여 너희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게 먹고 마시느냐?’ 라고 말하면서,그의(예수) 제자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반대하여 말했다(동직미능3복)

이들의 불평은 장로들의 유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장로들의 유전은 유대사회의 질서를 잡는 법으로도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들의 질문은 당시의 법으로 보아서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미쉬나가 그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여 준다. 즉 M. Demai II. 2에 보면 “신뢰할 수 있는 자(예를 들어 바리새인)는 그 땅의 백성이 초대하는 곳에 손님으로 응해서는 안 된다. ” II. 3에 보면 “그와 함께 일에 종사하는 자는… 그 땅의 백성들이 초대할 때에 손님으로 응해서는 안 되며 또한 그를 그의 입은 의상대로 손님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TB Berachoth 43b에는 학자에게 적당하지 않은 여섯 가지의 목차가 나온다. “무식한 자들과 함께 식탁에 임하여 길게 누우면 안 되며”가 그 중 하나이다. 반면에 TJ Shabbath 3e는 명백히 진술하여 “바리새인은 그 땅의 백성과 함께 희생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장로들의 유전은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그의 조상들이 대대로 만들어온 사람이 만든 규칙이다. 그들의 열심은 대단하지만 문제는 장로들의 유전이 오히려 율법과 대치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을 폐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가 ‘고르반’이다. (막 7:7-23)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며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들은 의사가 필요없다. 그러나 병든 자들은 필요하다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나는 의인을 부르기 위해 오지 않았다(동직완능1단) 그러나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이 같은 일반적인 형식의 격언은 유대문서나 비유대문서에 다 나온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15:26에 대한 Mekilta에 보면 “만일 저희가 병자가 아니면 어찌 의원이 필요하며 ?”라고 하였고 Pausanias apud Plutarch, Apophthegmata Laconica 230이하에 보면 “그는 말하였다. 의원은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보통의 경우 병자들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예수께선 장로들의 유전으로 다가오는 그들에게 바리새인들도 유용하다고 인정하는 격언을 사용하셔서 그들의 비난을 물리치실 뿐만 아니라 그 장로들의 유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계신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세리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사람들이다. 죄인들은 율법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특히 장로들의 유전에 관심이 없다. 예수께서 이들을 향해 하신 말씀은 이들이 아프다 하시는 것이며 죄인이라고 하고 계신다. 다만 장로들의 유전과 예수님의 대처가 다르다는 것이다. 장로들의 유전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자신들을 분리하지만 예수님은 의사로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는 것에 있다.

유대인들의 대처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선민사상은 유대인들은 의인이라 생각으로 이끌어 아담에게 예언하신 처녀의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무시하게 이르렀고 결국에는 유대인들의 조상들은 율법을 잘못 해석하여 그의 자손들에게 잘못된 유전을 내려 보냈던 것이다. 뿌리깊게 유대인들에게 내려진 장로들의 유전은 인간의 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장로들의 유전은 끊임없이 예수님과 대적한다.

로마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앞에 죄인임을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들까지도 죽고 있다는 데서 그 답을 찾는다. 왜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는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인가? 라고 말이다. 그것은 아담이 단순히 개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인류의 대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국가와 국가간의 조약과 비슷하다고할 수 있다. 비록 대통령과 대통령이 조약을 맺지만 그 조약은 국가에 사는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형벌은 그의 대표성에 의해 비록 아담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 지라도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되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며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형벌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는 공의이시다. 사람을 형벌한 것도 그의 공의로 이루어지만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그의 공의로 말미암는다.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은 결코 율법이나 동물의 제사를 통해 피할 수 없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됨을 알려주어 구원자를 필요함을 깨닫게 하며 제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선 의로운 피가 있어야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다. 그는 둘째 아담으로서 전 인류를 대표한다.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죄부터 구원하여 의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로 옮긴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하나님의 의를 쫓던 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오히려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있었던 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니 말이다.

​또한 유심히 볼 점은 레위가 제자로서 선택을 받은 후의 자세이다. 레위는 예수님을 쫓기 위해 세리를 그만 두었고 자신의 재산을 들여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세리들과 사람들과 함께 한다. 비록 그가 맘속에 그리스도를 정치적 왕으로 생각하여 나중에 한자리를 차지하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몇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웠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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